멕시코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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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제일의 대도시인 멕시코 시티는 2500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어 인구밀도 면에서 1위인 도쿄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 째로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입니다. 위치는 해발 2,600m의 계곡에 있으며 정부 소재지인 수도로 상업, 금융, 예술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테오티와칸 문화부터 아즈텍 문명까지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런 흔적은 각 거리에 세워진 근대적인 건물과 식민지 시대의 건물들의 조화에서 볼 수 있는데, 유적지와 고풍스런 건물들과 한편으로는 인디오 문명의 폐허 위에 유럽식의 호화로운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등 고대, 근대, 현대의 모든 요소가 집결되어 있습니다. 멕시코 시티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때에는 1535년으로, 멕시코 시티가 코스타리카까지 영토를 통치하는 누에바에스빠냐 부왕청의 수도가 되어 안토니오 드 메데사가 초대부왕으로 부임한 때입니다. 그는 멕시코 시티를 바로크식 건물, 넓은 공원, 잘 계획된 도로 등 아름다운 도시로 개발시켰고, 이 후 정리가 잘된 도시인 만큼 식민지 경영 중심지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후 멕시코는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새로 스페인의 왕좌를 차지하였던 부르봉 왕조가 멕시코의 부분적인 자치권을 뺏고, 왕권을 집중시키고 정규군을 창설하고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하는 등 과도한 착취를 일삼기 시작하자 멕시코의 끄레올레들과 스페인관리의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776년 미국 독립혁명, 1808년 나폴레옹 부르봉 왕조의 전복에 힘입은 멕시코는 1810년 9월 16일 교구 사제인 미겔 이달고의 독립을 위해서 무장봉기를 하자고 외침과 함께 첫번째 반란이 일어났으며, 4년 후에는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가 이끄는 반란에 이어 1821년 군대가 스페인에서 정권을 장악한 후에 멕시코 끄레올레 엘리트에 의해서 독립이 선언 되었습니다. 당시의 수도는 베라끄루스로 변경이 되었다가 1860년에 다시 멕시코시티로 변경 되었습니다. 이런 멕시코의 역사의 흔적은 멕시코 시티에 지금까지 남아있는데, 특히 기독교적인 웅장한 건물들은 멕시코 시티의 역사에 기인하는 것으로 과거 스페인의 신대륙 침략자들에 의해서 강제로 기독교가 전파되었는데 오히려 이것이 지역 주민들의 예술적인 기술과 혼합되어 웅장한 건축물을 완성시켜 종교적인 의미와 함께 예술적인 업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현재 멕시코는 전형적인 1차산업국가로 설탕, 커피, 석유, 동등의 주요산업이며, 점차적으로 자동차와 다른 경공업제품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 )에 힘입어 경제적 성과를 거두는 듯 했으나 무리한 경제정책으로 엄청난 경제난으로 화폐의 가치가 폭락하고,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체계가 잘 정착되지 못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의 제도를 혼합한 방식의 연방공화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몇번의 화폐개혁이 이뤄졌는데, 현재 사용되는 통화는 1993년 화페개혁을 거치면서 누에바페소(N$) 입니다. 또한 N$0.5는 50센따보스, 혹은 50 끼니엔또스라고 부릅니다. 표기는 미국의 달러와 같아서 혼동이 생기기도 하므로 물건을 사기전에 미국 달러 인지, 멕시코 달러 인지 꼭 확실하게 물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1N$=150원정도이지만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으로 환율 변동이 큽니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칸쿤지역이나 멕시코 시티에서는 미국의 USD를 사용하기도 합니다.